빌헬름 엠마누엘 폰 케틀러 주교는 교사가 거의 없고 교육의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마인츠 교구 내 열악한 환경의 농촌 지역 소녀들을 가르칠 여성 공동체를 꿈꾸었다. 농가들은 의료 혜택도 거의 받지 못했다. 케틀러 주교는수녀들이 기본 의료 지식을 갖추어 집집이 방문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아 주기를 원했다.
여성수도자들의 공동체를 세우는 꿈이 현실을 향해 가면서 케틀러 주교는 최근에 개종한 슈테파니 드 라 로쉬와 연락을 취했다. 슈테파니와 만난 케틀러 주교는 슈테파니의 성숙한 신앙과 하느님 섭리에 대한 확실한 신뢰, 타인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고 따르려는 개방된 자세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케틀러 주교는 슈테파니에게 새 공동체를 창설하는 일에 함께하자고 요청했다. 그들은 슈테파니가 다른 수도공동체에서 수련을 받기로 동의함으로써 새 수도회의 첫 장상이 되기 위해 더 온전한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양성을 확실하게 받기로 했다.
수도회가 성장하고 첫 그룹 수녀들이 교육과 치유의 사도직을 통해 예수의 사명을 계속해 나갈 준비를 갖추었을 때,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가 독일에서 권력을 쥐게 되었다. 1871년 시작된 반 가톨릭 운동인 문화투쟁 기간에 새로운 법이 통과되면서 수녀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 금지되었고 정부가 교육을 통제하게 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법이 시행될 초기에는 수도회들이 새 회원을 받아들이는 것도 금지되었다. 가톨릭과 가톨릭 수도공동체에 대한 반감이 심하던 시기임에도, 1884년 천주섭리수녀회는 교황청립 수녀회로 승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