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gregation of the Sisters of Divine Pr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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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재의 수요일 "주님,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회개하도록 하시며, 그들을 살려 주십니다. " (지혜서 11:24-25) image: www.google.com2024.02.15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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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사순편지2024년 사순시기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흔히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의 단식을 마치셨을 때, 사탄은 이때야 말로 예수님께 접근하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지치셨고 주린 상태였으며 홀로 계셨을 것입니다. 악마는 분명 예수님이 완벽한 희생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겠지요—그러나 악마의 타이밍은 적중하지 않았습니다! 사순시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타이밍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처럼 우리도 사막에서 관상에 잠기는 침묵 시간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철저한 변화를 이루기 위한 준비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보통 뭔가를 좋아할 때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합니다…우리는 습관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렇지만 사순시기 마다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삶, 우리의 비전, 주님께 대한 우리의 갈망을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는 대화하는 법, 용서하는 법, 신뢰하는 법, 그리고 사람들의 말을 믿어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올 사순시기는 일찍 시작됩니다. 이곳 북반구에서는 한겨울인 발렌타인데이– 전형적으로 우리 심장인 하트와 사랑을 기념하는 날—에 재의수요일을 맞게 됩니다. 심장과 재 중에서 우리는 어디에 집중하게 될까요? 아마 둘 다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재를 받으면서, 또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과 기도, 영적 독서, 기타 봉사활동(기도, 단식, 자선—수년에 걸쳐 우리가 배워온 것들)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하면서 이 사순시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사순시기는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께 돌아가는 때입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용서를 구하고, 우리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민감하게 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때입니다. 최근에 제가 글로벌 커넥션에서 나눈 것처럼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벅찰 정도로 과분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사랑을 지니신 분”입니다. 우리 각자에 대한 이러한 조건 없는, 관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여정 중에 만나는 취약한 이들에게 우리를 통하여 넘쳐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올해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또 사랑의 축제일인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하면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또 세상에 전하고 나눌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확실히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입니다. 이 세상은 전쟁과 빈곤, 굶주림, 증오에 찬 말들, 그리고 오직 자신의 “왕국”에만 관심 있는 리더들로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변화되고 인류 전체에 선이 되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섭리의 사람인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을-변화를 위해, 정의를 위해, 평화를 이루기 위해-사용하도록 부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고등학교 때 농구를 하신 저의 아버지는 프로 경기 관람을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는 곧잘 농구 경기를 빗대어 당신이 나누고 싶은 교훈을 알려주곤 했습니다. 그 교훈 가운데 하나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에서, 농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상황은 빠르게 변할 수 있는데, 3점짜리 슛 때문이기도 하고 마지막 세컨드 파울 슛 때문이거나 아니면 키 큰 선수들의 자유투 라인 덩크가 가능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득점, 힘의 균형은 순간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농구 경기에서 시간이 2분밖에 남지 않았을 때, 마치 영원의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이 마지막 2분으로 경기의 승패가 갈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팀이20점 뒤지고 있다 해도 여전히 기회가 있습니다. 가슴조이는 순간, 혈압이 상승하는 순간입니다. 기술을 시험하는 순간이 아닌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타이밍은 어떠합니까? 적절합니까? 적절치 않습니까? 우리에게 재가 중요합니까, 심장이 중요합니까 – 혹은 둘 다입니까? 우리는 한 수도회로서 더욱 자유롭고 역동적이 될 수 있도록 기꺼이 변화하고자 합니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우리 가슴이 듣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순시기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적으로 함께 걸어 가면서–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수도회로서–우리의 미래를 위한 하느님의 뜻, 그리고 희망과 치유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은총의 기회입니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는 정의를 구현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세상에서 섭리의 얼굴이 될 것입니다. 육주간의 사순시기라는 타이밍이 풍성한 축복으로 채워지기를 빕니다! Sr. Barbara McMullen 총장 바버라 수녀2024.02.12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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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커넥션, 8권 1호무모한 사랑 바버라 맥멀런 수녀 “나를 향한, 너무나 벅차고 과분한, 무모하기까지 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성가를 지난 여름 인근 본당에서 미사 드리면서 듣게 되었다. 이 성가를 듣는 동안 뭔가 나를 휘젓고 있음을 느꼈고, 그 후 내내 가슴 속에 이 가사가 남아 있다.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 천천히 눈을 뜨며 글로벌 커넥션 머리글을 생각하는 동안 내 정신과 가슴에 있던 이 노랫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느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일까? 나는 수년간 이러한 작은 표징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새해 글로벌 커넥션을 시작하면서 수도회 리더십 팀은 글로벌 커넥션 주제로 수도회 방향선언문에 명시된 “피조물과 주변부의 취약한 이들을 돌보며”를 선택했다. 하느님은 한 처음 자연계의 시작 때부터 당신의 넘치는 사랑과 아름다움과 선하심을 드러내 보이셨다. 창세기 1장31절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모든 피조물 안에서, 수많은 종과 땅과 하늘과 별, 그리고 인간에게서 우리는 하느님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본다. 동트기 직전 우리는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한 가닥 핑크 빛이 밤의 끝자락을 엿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는 바로 태양 광선이 하늘을 황금 빛으로 만들어 놓고 파란 하늘이 새날로 우리를 손짓하며 부르는 것을 본다. 이것은 최고의 “자연책”이다. 신학자이자 신비가인 이블린 언더힐은 다음과 같이 썼다. “피조물의 참된 의미는 예배행위로 즉, 하느님의 찬란하심과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위대한 상투스(Sanctus) 안에서 만물은 그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그들의 터를 갖게 된다.” 그렇지만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우리를 향한 가슴 벅찬 하느님의 사랑, 과분하고도 무모한 그분의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모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연결이 우리의 현실에 참으로 필수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생태적 위기들은, 우리는 기타 피조물과는 달리 더 나은 존재 혹은 훨씬 더 중요한 존재라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관계성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함에 있어 핵심이라는 점과 시노드를 통하여 우리를 일깨우려 했던 것처럼 우리의 생명력은 다른 피조물들과 우리가 맺는 친교 능력에 달려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잊고 있다. 2023년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가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피조물의 리듬과 우리 생명의 리듬이 조화를 이루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 담화의 다른 곳에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환경과 기후 불의에 희생당한 이들 편에 서라는 부르심, 피조물을 상대로 한 무분별한 전쟁을 종식하라는 부르심에 귀 기울입시다. 이러한 무분별한 전쟁의 영향은 이기적인 마음들이 부채질한 소비주의자들의 탐욕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지구의 물 순환을 망치고 있습니다. 화석 연료를 거리낌 없이 태우고 숲을 파괴하는 일은 큰 폭의 기온 상승을 부추기고 대규모 가뭄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심각한 물 부족은 작은 시골 공동체에도 큰 대도시에도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약탈 산업들이 원유와 가스 추출을 위한 시추, 규제 없는 대규모 채굴 사업, 집약적인 가축 농장과 같은 극단적 폐단을 통하여 담수의 원천을 고갈시키고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 전체 글 읽기는 첨부 파일 참고 ..............2024.02.12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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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대림 편지2023년 12월 1일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새로운 전례력이 시작되는 대림 시기에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영적 생활과 성장을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 대부분의 경우 대림 시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식을 일깨우게 됩니다. 지금. 바로 지금 말이죠. 대림 시기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오시는지, 우리 마음에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그저 “머물도록” 어떻게 도전하시는지에 대해 숙고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대림 네 주간에 담긴 희망, 사랑, 기쁨과 평화라는 덕목은, 우리가 지치고 상처 입은 세상과 이러한 은사를 나눌 수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은총의 초대에 마음을 열어야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는 하느님을 찾는 일을 미루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현재의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습니다. 현재는 결국 우리가 사는 곳,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는 곳이기에 그렇습니다. 최근에 저는 고 로빈 윌리엄스가 키팅 선생님 역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올랐습니다. 영어 교사인 키팅은 명문학교 남학생들에게 문학에 대한 사랑을 고취시키려고 애쓰는 분이었습니다. 키팅 선생님은 시에 무관심한 학생들에게 다음의 가르침으로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시가 예쁘기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이런 것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숭고한 추구이다. 그러나 시, 아름다움, 사랑,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들이다. 휘트먼의 시를 인용해 볼까. ‘오 나여! 오 삶이여!...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질문들, 믿음 없는 자들의 끝없는 행렬에 대해…어리석은 자들로 가득 찬 도시들에 대해. 이것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오 나여, 오 삶이여! 답은 바로 이것, 네가 여기 있다는 것—삶이 존재하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장엄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 너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네 주간의 대림 시기 여정에 임하면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자신에게 “삶이라는 이 장엄한 연극 속에서 나의 시는 어떠한 것이 될까?” 하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희망의 시, 기쁨 가득한 기대의 시, 한줄기 희망의 불빛을 주는 시가 될 수 있을까요? 내 삶의 시가 사랑과 평화를 반영할까요? 나의 말, 미소, 마음과 현존이 타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시 한 소절이 될 수 있을까요? “삶에서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휘트먼은 답합니다. “삶이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라고. 섭리의 여성, 섭리의 남성으로서 우리의 시는 감사와 찬미의 찬가, 섭리의 하느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셨던 모든 길, 그리고 계속해서 지금도 매일 축복하시는 모든 길에 대한 호칭기도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기쁘고 거룩한 대림시기가 되기를 빕니다! “임하소서 임마누엘”을 노래하면서, 여러분 삶의 시가 대지를 통하여 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에 대해 영광을 드리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사랑 넘치는 섭리 안에서, Sr. Barbara McMullen 총장 바버라 맥멀런 수녀2024.02.12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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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삼위일체 대축일 편지2023년 삼위일체대축일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저는 삼위일체를 생각할 때마다, 마치 오래 된 “수학 정석” 책에 나오는 수학 문제를 푸는 느낌입니다. 저에게 수학은 삼위일체처럼 종종 풀기 힘든 수수께끼였습니다. 수년간 저를 가르쳐주신 수학 선생님들과 그분들의 인내심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에세이를 쓰는 과제는 좋지만, “수학 정석”에 나오는 복잡한 문제를 풀라고 하지는 마세요! 시애틀 대학교 앤서니 파다바노 신부님의 신학 수업을 수강하면서 삼위일체에 대해 배운 것 중 두 가지가 생각납니다. 첫째, 삼위일체는 하느님에 관한 위대한 신비이고, 어쩌면 이 신비를 이해하는 것보다 이 신비가 우리 믿음에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한 분 이시지만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줍니까? 파아보노 신부님은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라고 한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말을 인용하여 이 요점을 풀어갔습니다. 신부님은 말씀을 계속하시면서, “관계”라는 한 단어가 삼위일체가 의미하는 바의 핵심이고, 초대교회 신학자들은 삼위일체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역동적인 사랑의 춤으로 묘사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매우 단순한 면– 즉 그분 현존의 매우 깊은 심연에서 하느님은 관계이심-을 보여주는 신비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보다 더 단순하거나 기본적인 것은 없습니다. 또한 사랑은 고립되어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고립된 채 억제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본성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한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상호관계를 말합니다. 또한 하느님은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관계”이시기에, 믿는 이들에게 사랑은 덤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섭리의 사람들인 우리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 섭리 주일도 기념합니다. 이 축일에 우리가 사는 지역은 물론 세계 차원에서 천주섭리수녀회 수녀들과 협력회원인 우리에게 기대를 갖게 됩니다. 삼위일체는 우리 모두에게 참된 관계, 우리를 내어주는 것, 책임, 돌봄, 측은지심, 그리고 우리 모든 존재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스며드는 사랑의 마음을 요구합니다. 섭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여정 길에 만나게 해주시는 이들에게 애정 어린 선물, 살 맛 나게 하는 선물이 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들의 고통에 함께하고, 그들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리며, 그들의 기쁜 소식에 함께 기뻐하고, 그들과 함께 억압적인 제도에 맞서 저항하며,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에게 정의의 빛을 비추고, 신음하는 지구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대변하기를 바라십니다. 바로 우리가 수도회총회 방향선언문에 명시한 내용들이지 않습니까? 요한복음서에서 우리는 하느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당신의 모상대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성자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어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죄와 죽음을 물리쳤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성령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면서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게 되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 모든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 넘치는 관계를 말해줍니다. 즉 하느님은 세 위격이지만 한 분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사랑의 공동체에 살아계십니다. 어떠한 이미지도, 어떠한 은유도, 어떠한 체험도 하느님의 의미에 대해 남김없이 논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세분이시자 한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이고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하느님은 홀로 계시지 않습니다. 마침내 1+1+1=1 이라는 산수 등식을 이해하기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이자 천주섭리축일에,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생명과 사랑이라는 선물에 기쁨 가득하기를 빕니다. 하느님의 사랑 넘치는 섭리 안에서, Sr. Barbara 총장 바버라 맥멀런 수녀2024.02.12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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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창설축일 편지2023년 9월 29일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오늘 우리는 수도회 창설 172주년을 기념합니다! 기념하는 일은 인생의 순간들을 기리는 멋진 시간으로, 이러한 순간들을 통하여 우리는 더 참되고 더 깊이 있는 자신이 됨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빛과 신뢰와 희망이라는 유산을 남겨준 거룩한 두 분, 케틀러 주교님과 마더 마리가 지녔던 위대한 믿음의 순간들을 기념합니다. 창설자들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섭리가 의도하는 것 안으로 우리를 더 깊이 인도했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섭리를 더욱 더 드러내는 거룩한 임무를 우리에게 부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행하고 살아가는 방식들은 두 분이 우리에게 마련해 준 기초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창설자들의 삶을 통하여, 수세기에 걸쳐, 우리가 존재해 왔고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는 창설자들의 목소리를 우리 마음 안에서 듣습니다. 창설자들은 우리를 과거와 연결시켜주면서 동시에, 그분들로부터 우리가 배운 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새롭고 더 나은 미래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오늘날 우리에게는 새로우면서도 도전적인 모험을 시작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섭리는 종종 우리를 놀랍고도 예측치 못했던 방향으로 이끕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 홀로 이 여정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함께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고, 상호문화성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으며,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기 위한 찬미 받으소서 위원회를 통하여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고, 수도회 안에서 우리가 지닌 자원들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편지를 읽으실 때면, 수도회 리더십 팀과 관구장들 그리고 선교지 장상은 페루 리마에서 수도회 리더십 평의회 연례 회의 중에 있을 것입니다. 9월 29일, 페루에서 새 건물 축성식을 하면서 페루 수녀님들과 함께 창설일을 또 다르게 기념할 것입니다! 페루 수녀님들이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때에 우리가 함께하게 된 것이 얼마나 시기 적절한지요. 페루 수녀님들의 미래를 위해 또 우리의 미래를 위해 섭리의 하느님께서 무엇을 마련하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케틀러 주교님과 마더 마리, 그리고 우리 수도회 선구자들인 첫 그룹 수녀님들의 지혜가 우리를 지지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삶의 순간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위한 그 비전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들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도 하고, 변모시키기도 하며 우리뿐 아니라 모두에게 소리칠 것입니다. 섭리는 지금 여기 그리고 영원히 우리 삶의 확실한 기반이라고. 수도회 창설일 축하합니다! Sr. Barbara 총장 바버라 맥멀런 수녀2024.02.12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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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커넥션, 7권 4호“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18: 20) 김은순 로사 수녀 미사 중의 복음이 마태오 복음 18장 2절의 말씀인 경우에는 “둘이나 셋이 모인 곳 주님 계시네. 사랑과 희망 나누려 모였나이다. 주여 어서 오시어 축복하소서. 주의 기쁨 온 세상에 전하오리다(가톨릭 성가 456장)”라는 성가를 한국어 미사에서는 노래한다. 주님이 함께 계시다면 산재해 있는 현실의 무게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우리를 축복해 주시길 희망차게 청하는 성가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24차 총회에서 결정한 방향선언문을 살아내고자 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면서도 단지 하느님의 축복만으로는 이를 성취할 수 없다는 걸 또한 덧붙여야 한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이것은 그분의 축복과 우리의 노력이 합쳐진 공동작업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식의 결과이든, 그 절반의 책임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또한 강조하고 싶다.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라는 용어가 있다. 이 용어는 핵 연쇄 반응을 시작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핵 물질을 나타내는 단위인데, 지금은 이를 세계 300여개 도시에서 매월 열고 있는 자전거타기 행사에 사용하고 있다. 이 행사는 1970년대 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백명의 참가자가 참여한 자전거 행렬로 시작되었고, 1992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크리티컬 매스와 유사한 형태의 자전거 투어 행사로 시작한 이래, 이 용어를 “어떤 행동을 시작하는 최소한의 인원”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라는 말씀과 크리티컬 매스라는 용어의 의미는 서로 상통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의 수도회 공동체로서” 총회방향선언문을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을 시작하고 지속하는데 필요한 최소인원이 2-3명이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로 내게는 들리며,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끝은 번창할 것이다.” (욥8,7)는 말씀을 또한 떠오르게 한다. 하나의 수도공동체로서 변모를 꾀하는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에 있는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그리고 한 사람의 크리티컬 매스의 맴버로서 우리는 그간 수도회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무엇을 성취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숙고해 보면서,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시길 겸손되이 청하자. 우리 자신과 수도공동체를 축복해 주시길 청하며, 제24차 수도회총회 방향선언문 전문을 다시한번 반복하고자 한다. “육화한 섭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다그치기에 우리의 카리스마와 사명에 충실한 가운데 천주섭리수녀회 회원인 우리는 창의적 방법, 특별히 테크놀로지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함으로써 상호문화적 삶을 실현하고, 피조물과 주변부의 취약한 이들을 돌보며, 우리의 자원을 투명하게 또 협력하는 자세로 공유하는데 헌신한다.” ....................전체 글 읽기는 첨부 파일 참고 ................ image: www.google.com2024.02.12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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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창설자 축일 편지2023년 창설자 축일 편지 빌헬름 엠마누엘 폰 케틀러 주교—7월 13일 마더 마리 드 라 로쉬—8월1일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저는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다음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좋은 창설자가 되게 하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 오늘날 성공한 여러 회사들을 생각해 보는 중에 바로 비전과 열정과 목적 의식이 떠올랐습니다. 성공한 창설자들의 역사를 보면 그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어떠한 사건, 일종의 사명감—세상을 바꾸고 타인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필요에 응답하고 싶어하는 것—과 함께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창설자들의 역사가 지닌 힘을 보면 원칙과 가치와 요구를 행동으로 옮기게 합니다. 이는 그 역사 전체에 걸쳐 흐르는 실타래가 되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지지할 마음을 갖게 하고 이를 존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만듭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수도회 창설자들 곧, 케틀러 주교님과 마더 마리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비전이 있었고, 그들은 필요성을 느꼈으며, 그들은 현존과 측은지심과 또 수십년간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하게 만들었던 목적 의식으로 당대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역사는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통하여 우리 창설자들에게서 시작되어 우리 자신의 역사를 통해 계속 엮어지고 있는 “실타래” 일부를 나누고자 합니다. 케틀러 주교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내면의 실체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상황들, 때로 대수롭지 않고 우연한 일로 보이기도 하는 상황의 참뜻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이렇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형태로 감추어져 있는 사랑 넘치는 하느님의 모든 뜻과 그분의 한없는 자비를 곧잘 알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나의 사명 안에서 나에게 맡기신 일의 전체적인 윤곽을 이제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삶 안에 일어나는 상황들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를 위해 그 상황 안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의 의도를 알기 위해 노력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섭리의 하느님께서는, 케틀러 주교님과 마더 마리처럼, 우리가 경청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과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 나서라고 손짓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얼굴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계속해서 역사를 이어가는 것…신뢰라는 우리의 카리스마와 여러 가능성들에 우리를 개방하는 카리스마를 살아가는 것으로 이 세상이, 이 시기에, 이 시간에 우리에게 이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수도회에 살아 있는 케틀러 주교님의 용기와 위험을 감수하는 정신과 마더 마리의 측은지심 그리고 사랑의 마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마더 마리의 말씀 중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힘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 영혼에 불을 던지신 분은 섭리의 하느님으로, 그 불이 제 안에서 타오르고 저를 들어 높이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우리는 마더 마리가 자신의 삶에서 극복해야만 했던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이 가족 안에서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마더 마리는 그렇게 했습니다. 여성 수도자가 되어 독일의 시골 여성들을 이끌도록 요청받았을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아우취 신부의 권력 남용 문제를 대하는 것과 너무나 불의하게 물러나는 것은 깊은 상처를 받는 일이었지만, 순수하게 따랐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인내하기에는 엄청난 정신력과 섭리에 대한 신뢰가 필요했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마더 마리의 정신에 있던 그 불이 오늘날 우리 안에 살아있으면서 우리가 맡은 일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게끔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엮어진 마더 마리의 “실타래”는 우리가 정의를 위해 일하고,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며, 타인들을 존엄과 존중과 사랑으로 대하도록 용기를 줄 것입니다. 존 알바 수녀님이 소시간경 전례서 2권에서 나누었듯이 오늘날 우리는 “마더 마리의 정신을 매우 본질적인 면에서 식별하여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위해” 애씁니다. 수녀님들과 협력회원 여러분, 저는 우리 각자와 우리 수도회를 위한 기도로 창설자들에 대한 숙고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섭리의 하느님, 저희는 수도회 창설자 케틀러 주교님과 마더 마리 드 라 로쉬의 정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창설자들이 지녔던 용기, 첫 그룹 수녀님들이 지녔던 그 용기를 저희에게 주시고, 창설자들을 따른 모든 세대의 수녀님들이 이어온 그 힘을 주소서.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으로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었던 초창기 수녀님들의 창의성에로 저희의 마음과 기억들을 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다그치기에,” 그리고 섭리와 우리 서로는 하느님 백성과 함께 나누는 선물이었고 또 계속해서 선물이 될 것임을 믿기에 당신 손에 저희를 맡기나이다. 우리의 동반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의 기원,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곳을 경축하고 선포하고자 애쓰는 저희를 도와주소서. 아멘. 섭리의 하느님과 여러 가능성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인도해 주기를 빕니다! 총장 바버라 맥멀런 수녀 출처- 두 권의 책에서 각색 소시간경 전례서—1권. 수도회 창설자들의 탄생 200주년 기념 소시간경 전례서—2권. 수도회 공동창설자 탄생 200주년 기념2024.02.12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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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컨넥션, 7권 3호시노달리타스, 참여, 친교 메리 프랜시스 플레쳐 수녀 수년간 우리 모두는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시노드 준비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종이 제정한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절차에 대해 읽어보았고, 또 여기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교회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종이 시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온전히 함께 시작하도록 요청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초대가 우리 미래의 비결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많은 담화와 글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목적 회심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목적 회심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에서 나온 것으로, 이후 많은 교회 문서와 가르침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왔다. 나는 “사목적 회심”에 관한 설명을 읽으면서,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추구하고 노력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7년에 개최한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는 “사목적 회심”을 “공동 책임과 실질적인 참여를 증진하기 위한 개방적 자세, 대화 및 자기를 내어주는 것...”으로 설명했다. 사목적 회심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식별, 계획세우기, 의사 결정 및 실행에 있어 협력적인 자세로 참여하여 예수님의 사명을 위한 일에 하나가 될 것을 요구한다. 무엇인가? 우리는 공동체 내에서는 물론 하느님 백성 가운데서 우리가 행하는 사도직에서 똑같은 공동 책임, 개방적 자세와 대화, 식별 및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초대받고 있는가? 우리가 이미 실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은사와 통찰력을 나누는 일에 온전히 참여하는 시노달리타스 정신이 세상을 위해 어떻게 우리를 친교로 이끌고 예수님의 현존이 되게 하는가?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는 특별히 급변하는 시대, 필요성을 이해하고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모두가 참여할 것을 요청했던 시대에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살아온 여러 방식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사명을 위해 새로운 차원에서 함께하는 곳으로, 보다 깊은 차원의 시노달리타스로, 더 큰 공동 책임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에 우리 수도회 통치 구조는, 수도회 각 단계의 공동체 리더들이 식별과 방향 설정과 의사 결정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통치 구조 안에서 회원들은 각자가 파견받은 사도직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였고, 각 회원은 공동체와 사도직에서 자신이 맺는 관계와 봉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돌보심을 증거하였다. 이러한 구조 방식은 수도회 창설 이후 120여년간 섭리의 여성인 우리의 삶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 방식이 적절했다. 교회 내 혹은 수도공동체 안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던 반면, 수십년간 세상은 많은 것을 배워왔고 개발해왔고 발전해왔기에, 교회 또한 마찬가지로 1960년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고 봉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시대의 징표들을 통하여 “현대화”가 요구되었고,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통하여 그리고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인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공의회에서 새로운 해석들이 있은 후, 1968년 우리 수도회 리더들은 임시 총회를 개최하여 공의회에서 우리와 모든 수도공동체들에게 요구하는 바들을 살펴보고 다루기 시작했다. 이어진1970년 정기 총회에서 수녀들은 우리 수도회의 생활과 구조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새로운 이해들을 토대로 실험과 연구를 시작하였다. “변화”를 위한 이 두 차례 총회에서 대의원들은 바티칸 공의회 결과인 새로운 신학과 교회학, 새로운 가르침과 도전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이후 50여년간 우리는 영적으로 심화되었고 지적으로 성장해왔으며 심리적으로 성숙하였고 기타 여러 면에서 강해졌다. 우리 수도회의 정신, 카리스마와 사명은 수도회 창설때와 여전히 동일하지만, 표현 방식들은 각각의 새로운 시대에 맞춰 발전해왔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세례 받은 자로서의 사명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평등성,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영적 은총의 선물의 진가를 인정함에 있어 엄청나게 성장해왔다. 개인 카리스마는 물론 공동 카리스마를 더 많이 의식하면서 우리 시대, 우리 문화, 그리고 우주적 차원에서 드러나고 있는 요청들을 위해 우리 공동체 내에서는 물론 공동체를 넘어 우리는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보다 수평적이고 원탁 형태의 리더십을 상상했다. 우리는 각 회원들이 대화와 식별과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넓혀왔다. 교육과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더 많은 정보 나눔과 회의 및 논의에 더 많이 참석할 수 있는 기회들을 통하여 우리는 수도회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 우리 수도회 역사와 카리스마를 연구하고 우리 수도회 창설의 원천으로 돌아가고 창설자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새 회헌과 총지침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이어진 수 십년간, 더 많은 대의원들이 참석하고 기도와 숙고와 경청과 나눔에서 비롯된 힘있는 총회 다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집중하였다. 수도회총회 방향선언문은 정의, 국제성, 시대의 징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도직, 리더십, 카리스마, 그리고 섭리 영성에 관한 것이었다. 1990년대, 우리는 “우리의 카리스마와 사명을 현 사회의 상황에 맞게 드러낸다”를 채택함으로써 “총체적이고도 철저한 수도회 재창설”의 필요성을 천명하였다. 이러한 수도회총회 방향선언문은 “복음과 케틀러 주교와 마더 마리가 전해준 전통을 기반을 둔… 변화, 위험 부담, 철저한 개인적 공동체적 회심, 미래 희망을 형성하는 쇄신된 시각”을 요청했다. 여기에는 “모든 회원들이 책임을 공유하는 것에 기반을 둔…참여형 통치”에 대한 헌신도 포함했다. 각각의 새 방향선언문과 총회위임사항들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공동체생활과 섭리에 대한 증거를 발전시켜가고 강화하며, 사명 안에서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하려는 보다 큰 갈망과 보다 깊은 초대에서 비롯되었다. ....................... 전체 글 읽기는, 첨부 파일 참고 ........................... image: www.google.com2024.02.12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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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부활 편지2023년 부활절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우리는 사순 시기의 막바지 여정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내면의 풍경을 숙고하면서 ‘거룩하신 분’과 많은 만남을 가지셨기를 바랍니다.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저는, 여러분 마음의 풍경이 많은 은총의 초대를 받으셨기를, 그래서 이제는 부활대축일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할 채비를 갖추셨기를 빕니다. 성주간 화요일 독서에서 봉독 되는 이사야 예언서(49:6 )를 통하여 우리는 “민족들의 빛이 되라.” 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을 듣다 보면 저는 언젠가 피정 중에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다음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빛이 된다는 것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가장 멋진 견해들 가운데 하나는 시력과 관계가 있었다. 모든 사람의 몸 한가운데 정중앙에는 실제로 불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불은 심장에서 타올랐다. 물론, 불은 항상 빛을 발하고, 사람 마음에 있는 그 불에서 발산하는 빛은 가슴을 가득 채우고 목까지 올라 머리로 스며든다. 마침내 이 빛은 눈을 통하여 몸 밖으로 나와 세상을 비추었고, 이런 방식을 통하여 사람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빛이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눈을 통하여 발산하는 그 빛의 속성은 불이 타올랐던 심장의 속성에서 그 본질을 취하였다. 유대인의 경우, 사람 심장에 있는 불과 접한다는 것은 야훼 하느님과 관계 맺는 것을 의미했기에, 하느님이 여러분 삶의 중심이 될수록 여러분의 불이 더 강하게 타오르게 되었다. 눈에서 나오는 빛이 밝을수록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었고, 그 빛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 또한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있어 빛은 속성의 문제로, 그분 제자들의 눈에서 발하는 빛은 하느님 빛의 속성을 지닌, 순수한 마음에서 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족들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서 타오르고 있는 그 불이 하느님 빛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민족들을 위한 빛이 되고자 한다면 전쟁, 폭력, 인종차별, 배신, 상처라는 어둠을 밀어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 되고자 한다면 정의를 갈망하고 갈구해야 하며, 생명과 자선의 복음을 선포하고, 우리 안에서 용서하려는 마음이 올라오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심장의 불” 로, 우리를 부활—그리스도, 우리의 빛—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섭리를 증거하는 자인 우리에게는 사명과 카리스마라는 “심장의 불” 입니다. 콜린 깁슨 수녀님 (SSJ)은 징표들(The Sign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희망은 현실을 지워버리지도, 불확실성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희망은 당신의 맥박을 느끼는 가운데, 당신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태양은 떠오를 것이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고, 그래서 당신 또한 부활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생명의 부르심에 맞갖게 일어서라, 당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여…이것이 살아가는 순간이고 빛나는 순간이고 희망하는 순간이며, 무슨 일이 있든…우리가 지닌 희망을 통해 서로 마주보고 마음을 열어 함께 나아가도록 초대를 받아, 우리의 삶은 한 개인을 위해서는 물론 모두를 위하여 밝아오는 새 희망의 표징이 될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렇듯 강한 불로 채워주시어, 여러분이 발하는 빛을 통하여 측은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 세상에 섭리의 얼굴을 보여주기를 빕니다. 그 빛이 개인적으로 또 수도회 차원에서 우리를 변모시키어 우리의 미래를 향해 담대하고 굳건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수도회 리더십 팀에서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사랑과 축복을 전하며, Sr. Barbara McMullen 총장 바버라 수녀2024.02.12 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