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gregation of the Sisters of Divine Pr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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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차 수도회 총회 대의원 첫 번째 줌 회의제25차 수도회 총회 대의원 첫 번째 줌 회의 제26차 수도회 총회를 위한 제1차 대의원 줌 회의가 2025년 1월 26일에 개최되었다. 총회 대의원은 총 37명으로, 수도회 리더십팀 4명, 독일 케틀러 관구 4명, 미국 마리 드 라로쉬 관구 13명, 한국 성요셉 관구 14명, 그리고 페루 미션 2명으로 구성되었다. 모임은 시작기도와 바버라 총장 수녀의 환영 인사로 시작되었으며, 이어 모든 대의원들이 각자의 이름과 사도직을 소개하고, 시작기도 중 마음에 와 닿았던 단어나 구절을 한 사람씩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바버라 수녀의 인풋(Input)이 있었는데, “거룩한 모험: 여러 가능성을 찾아가는 길은 삶을 이미 정해진 각본이 아닌, 거룩하게 펼쳐지는 과정으로 바라보도록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의원들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코비 야마다(Corbi Yamada)의 아마 너라면(May Be)’ 이야기를 시청하며 이를 숙고하였다. 이후 대의원들은 “어떤 은사와 재능을 수도회 총회에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또한 회헌 73항에 근거한 대의원의 역할과 총회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한 설명과, 대의원 선출에 앞서 발송된 자료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으며,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제25차 총회를 향한 ‘거룩한 모험’의 여정을 시작하며, 우리 자신과 수도회 안에 성령께서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린다.2026.01.27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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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줌 회의 인사말: 총회 준비를 위한이 모임의 중요성과 다가오는 총회 총장 발버라 맥멀런 수녀 지난 여름, 여러분은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고 우리 수도회의 경계를 넘어 관계를 형성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전 세계의 수도회 공동체로서 한자리에 모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깊이 경청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대륙과 바다를 넘어 서로를 더 잘 알게 됩니다. 우리의 국제성과 다문화성이라는 선물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성장하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창립자들의 정신과 영성을 오늘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 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총회의 주제인 거룩한 모험: 여러 가능성을 찾아가는 길(Holy Adventure: The Path to Possibilities)을 묵상하며, 이 주제와 그것을 살아내는 여정이 우리가 한 번도 선택해 본 적 없고, 미래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기를 희망합니다. 수도회로서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부르심이 다가오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섬기라는 부르심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로부터 배우라는 초대일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도 생활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도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와 개방성이라는 우리의 카리스마가 우리를 새로운 사고방식과 존재 방식으로, 용기와 비전을 가지고 응답하도록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알지못함’의 자리야말로 더 큰 지혜가 태어나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각자는 진리의 한 조각, 나누어야 할 고유한 지혜의 선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시노달적 경청을 통해 서로 나눌 때, 우리는 각자의 꿈과 각자의 모험을 전체의 소중한 일부로 존중하게 됩니다. 거룩한 모험의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은 길의 모든 굴곡을 미리 알고 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험에는 신비와 위험, 용기가 따릅니다. 이는 우리 각자가 파스카 신비 안으로 들어가도록 초대합니다. 하나의 역사적 현실이 저물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신 새로운 미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가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과 행동이 다른 이들을 섬기고, 이 세상의 고통받고 깨어진 이들의 필요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능성으로 가는 길이 무엇일지 함께 깊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모든 나눔과 경청을 통해 변화의 과정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끌며, 천주섭리 수녀회 수녀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하며, 이 시대의 요청에 대한 새로운 응답으로 거듭나게 하기를 희망합니다.2026.01.26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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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국제 비대면 모임사진 SR. Elsa, CDP 제25차 수도회 총회 준비의 한 과정으로, 전체 회원이 함께하는 1차 비대면 국제 모임이 진행되었다. 이번 1차 모임에는 독일, 미국, 한국, 페루에서 약 7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하였다. 모임은 총장 발바라 수녀의 환영 인사로 시작되었으며, 총회 주제와 이번 모임의 목적이 소개되었다. 이어서 참석자들은 4~6명으로 구성된 소그룹으로 나뉘어, ‘우리 수도공동체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다양한 가능성으로 여겨지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 그 내용을 전체 그룹과 공유하였다. 또한 이 모임은 총회를 위한 기도를 시작 기도와 마침 기도로 바쳤으며, 각각 한국어와 독일어로 봉헌되었다.2026.01.14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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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축일이미지: Stained Glass France Jesus - Free photo on Pixabay “우리 주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요한에게 오셨습니다. 이 정결케 하는 물을 통해 우리는 새 생명으로 회복되고, 죄인인 우리의 본성은 치유되고 거룩함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 성모찬가 from 'people's Companion to the Breviary' -2026.01.11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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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커넥션, 10 권 -1호글로벌 커넥션 10권 1호 그 너머를 보라 바버라 맥멀런 수녀 며칠 전, 이번 호 글로벌 커넥션에 무엇을 쓸까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옛 성가 한 곡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먹는 빵, 그 너머를 보라. 너의 구세주, 네 주님을 보아라. 네가 마시는 잔, 그 너머를 보라. 피로 쏟아진 그의 사랑을 보라.” 라는 성가였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할 때마다 성령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건네려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에 주의를 기울이곤 합니다. “그 너머를 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표면 너머 본질을 바라보라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즉각적으로 응답하고, 첫 인상만으로 선입견을 가지며 모든 것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시대에 살다 보면 겉에 드러난 것만 보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고 겉핥기식으로 정보를 접하며 압축된 결과물만을 원합니다. 한마디 말이나 한 순간의 경험으로 사람들을 분류합니다. 모든 상황이 늘 그래왔던 방식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예단합니다. 하지만 인류의 가장 중요한 진실 가운데 일부는—또한 우리를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순간들은—첫눈에 보이는 너머를 들여다볼 때만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그 너머를 보라”는 말은 초대이자 도전입니다. 즉, 속도를 늦추고 추측에 의문을 제기하며, 현실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풍요롭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본능적으로 지름길을 택함을 인정하게 되면, 드러나는 표면 너머를 보게 됩니다. 예측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시야를 좁게 만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할 지 이미 알고 있다고 단정지을 때, 더 이상 경청하지 않게 됩니다. 공동체에서 회원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습니까? 어떤 도전이 있을 때 가능한 결과가 하나 밖에 없다고 가정한다면, 다른 대안책들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이 어제와 똑같을 것이라고 단정할 때, 눈앞에서 미묘하게 펼쳐지는 가능성들을 놓치게 됩니다. 기대(혹은 예상)은–희망적이든 두려움을 느끼든– 마치 색안경과도 같아서, 대상을 제대로 살피기도 전에 보이는 것에 색을 입혀버립니다. 며칠 전, 이러한 잘못된 가정과 기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를 읽었습니다. 암으로 입원한 일곱살짜리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아빠는 소녀가 태어난 날 집을 나갔고, 엄마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 놓고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마침, 매주 병원에 와서 어린이 환자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크였습니다. 두 팔은 온통 문신으로 덮여 있었고, 수염은 가슴까지 내려왔으며, 몸집도 목소리도 큰 오토바이족이었습니다. 마이크 같은 사람이 소아 병동에, 그것도 어린 환우들에게 책을 읽어주러 올리는 없다고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소녀 곁에 앉아 춤추는 기린에 관한 책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영특했던 소녀는 마이크에게 자기가 죽을 때까지 “아빠”가 되어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자신의 딸이 16살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부터 가슴에 뚫려 있는 거대한 구멍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입을 뗐습니다. “아가, 정말 영광스러운 제안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젠 좋은 아빠 노릇을 못 하겠어. 실수할지도 몰라.” 소녀의 얼굴이 해처럼 환하게 밝아지면서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저를 통해 연습해보세요.” 그날 이후 마이크는 매일 소녀에게 책을 읽어주러 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제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마이크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했다면 그를 무시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겉모습이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할리 오토바이족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표면 뒤에는 측은지심으로 가득 찬, 어린 생명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드러난 표면 너머를 보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결국은 보는 것이므로, 보기 위해서는 추측에 무게를 두지 말아야 합니다. 첫인상으로 어떠한 것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것 말고도 사실일 수 있는 건 없을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 뒤에 감추어진 또 다른 이야기는 무엇일까?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마음을 열어두라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겉모습 너머를 바라볼 때, 약함이라고 여겼던 곳에서 회복력을, 순박함을 예상했던 곳에서 지혜를, 거친 모습 뒤에 숨겨진 부드러움을, 혹은 심지어 자신감 넘치는 미소 뒤에 감춰진 괴로움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수많은 겹으로 둘러싸인 복잡한 존재입니다. 타인을 깊이 만나기 위해서는 호기심과 겸손,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해는 종종 사실에 기반을 두는 대신, 기대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지 않음에서 비롯됩니다. 타인이 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또 내가 의도한 대로 사람들이 내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면서 상대가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실망하거나 기분이 상하곤 합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때 즉시 느끼는 좌절감 너머를 보면, 그 이면에는 어떤 악의가 아니라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서로 다른 경험, 혹은 순수한 오해가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더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단순히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이 처한 현실에 응답할 수 있게 됩니다. 보이는 것의 너머를 볼 때, 우리는 종종 깊은 확신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또 다른 여러 가능성들을 발견합니다. 심지어 고군분투 속에서도 성장의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을 통해 지혜가 드러날 수 있고, (이야기 속의 마이크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새로운 사랑 법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드러난 표면 너머를 보는 것은 우리에게 더 깊은 통찰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더 담대하게 섭리를 신뢰하도록 촉구합니다. 뭔가를 예상해버리면 기존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우리 수도회를 위해 눈에 드러나는 이상을 본다는 의미는, 현재의 순간이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음을, 변화는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비전 속에서 희망이 피어날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표면 너머를 보는 것은 진실, 신비, 그리고 섭리가 우리에게 베푸는 은총 가득한 미래에 대한 헌신입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기대를 다루어 뜻밖의 일이 생겨날 여지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결코 다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섭리의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보이는 것 너머를 봄은 깊이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존중하는 것이며, 진실은 겉으로 드러난 이면에서, 인내와 측은지심을 요하는 곳에서 자주 발견됨을 믿는 것입니다. 추측보다는 이해를, 확신보다는 호기심을,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보다는 열린 마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너머를 볼”때, 더 넓게 바라보는 길– 우리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풍요롭게 해주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섭리가 우리를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길을 따를 것입니다. 특별히 수도회총회가 개최되는 새해를 맞이하여 모든 순간을 첫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순간으로 간직합시다. 그러면 더 심오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음을 잊지 않게 될 것입니다. 수도회총회 주제인“거룩한 모험: 여러 가능성을 찾아가는 길” 은 “그 너머를 바라보고,”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는 성서말씀에 공감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소식지 전체 읽기는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2026.01.04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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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New Year !"당신의 선하심으로 한 해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가시는 길마다 기름이 방울져 흐릅니다. (시편 65, 12)" 섭리의 하느님 안에서 은총 가득한 복된 한 해를 보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2026.01.01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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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새해 축복을 빕니다!2025년 12월 16일 친애하는 수녀님들과 협력회원 여러분께, 거룩한 성탄을 앞두고,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갈망하는 세상에 섭리의 정신을 전하는 수녀님들과 협력회원 여러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이 거룩한 시기에 우리는 다시 한번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자 세상이 줄 수는 없지만 항상 찾고 있는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분께로 모입니다. 이주민 위기, 전쟁, 총기 사고 등 여러 비극들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올해, 여러분들께 성탄 인사를 드리면서 평화에 대해 잠시 숙고하게 됩니다. 수동적이거나 나약한 평화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현존에 대한 신뢰에서 싹튼 깊고 담대한 평화에 대해서요. 인간 존엄이 무시당하는 곳에서는 참된 평화가 존재할 수 없다고 교회를 일깨우셨던 케틀러 주교님의 비전은 지금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주교님은 정의와 측은지심의 사랑이 뿌리를 내릴 때, 모든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렇게 인식하는 데서 나오는 사랑으로 행동할 때, 평화는 성장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케틀러 주교님의 정신 안에서, 평화란 담대한 “예(동의)”로부터 시작함을 올 성탄에 다시 기억해 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하느님 섭리를 볼 수 있음에 동의하고, 소리를 내어도 무시당하는 이들을 들어 높이는 일에 동의하며 온유와 자비와 정의로 부서진 것들을 치유하는 공동체 건설에 동의하는 “예” 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르심을 사도직과 기도와 일상의 증거를 통해 구현해내기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서 평화로 나아가는 길로서 겸손과 측은지심의 사랑과 현존을 선택하신 베들레헴의 고요한 기적을 증거하게 됩니다. 평화의 왕이자 아기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사랑에 찬 계획을 신뢰하는 데서 오는 평온함으로 여러분의 가슴을 새롭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섭리께서 함께하시며 새해를 맞이하도록 이끌어 주심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에, 삶을 통해 평화가 가능함을 계속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의 축복을 전하며 기쁜 새해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사랑에 찬 섭리 안에서 하나되어, 바버라 맥멀런 총장 수녀2025.12.24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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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대림편지대림 편지, 2025년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또 다시 대림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기대” “기다림” “깨어 있음” “방심하지 않음” 그리고 “희망”이라는 단어들을 대림 시기와 연결 짓습니다. 침묵 속, 대림의 깜깜한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귀 기울이고,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과 모든 피조물의 신음 속에 계신 하느님의 소리를 들으며, 상처입은 세상의 요청에 깨어 있는 시기입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대림시기를 시작하면서, 변화에 개방적이고 과거는 물론 미래 세대들과 연계할 준비를 갖추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일하심을 의식한다면,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통해 우리의 이해력과 변화할 수 있는 역량이 확장되고 진정한 변모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림은 기다림의 시기로, 성령—마리아를 움직여 가브리엘 천사에게 “예’라고 응답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그 성령—께 사랑의 시선으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열려 있었고 깨어 있었으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움직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실제로 디트리히 본회퍼는 마니피캇(성모의 노래)이야말로 “지금까지 사람들이 부른 대림 성가 중 가장 열정적이고 거침없으며, 심지어 가장 혁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대림 시기 동안 저녁 기도를 하면서 성모의 노래를 바칠 때마다, 하느님의 계획에 대해 마리아가 이해한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숙고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이는 복음이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그 복음을 살아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함을 확실하게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변함없이 “충실한 기다림” 을 실천한다면, 우리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살아계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대림의 기다림과 더불어 침묵의 깊이를 더할 때,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시는 하느님을 참으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지난 5월 세계여자수도회 총장연합회(UISG) 정기총회에서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님이 발표한 내용을 상기해봅니다. 수녀님은 달과 달빛을 매우 시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면서, 이를 달과 겸손한 별들 안에서 드러나는 시노드적 현존의 상징으로 표현했습니다. 수녀님은 축성생활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양은 지고 달의 시간입니다. 참 빛이 반사된 빛을 생기게 합니다. 현실의 윤곽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시간입니다. 우리 안에서 또 우리 가운데서 잠자는 유령이 깨어나 수천의 질문과 불확실성과 두려움의 형태를 취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끝날 것인가? …끝날 것인가?” 수도 생활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하고, 영적 현존과 소속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 방식을 깨달으면서, 오늘날 많은 수도공동체들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대림 시기에 천주섭리수녀회 수녀들로서 또 협력회원인 여러분은 약속을 통해 우리 공동체와 맺은 관계 안에서 “우리가 한 봉헌이 지닌 참된 가치들을 다시 발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다림과 기대와 희망의 대림 시기에 우리가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참으로 거룩한 모험에 함께하고 있음을 신뢰할 수 있기를 빕니다. 기쁜 대림시기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랑 넘치는 하느님 섭리 안에 하나되어, Sister Barbara McMullen, 총장 바버라 수녀2025.11.26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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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섭리 수녀회의 다짐 선언문UISG 전체 회의의 최종 성명서와 그에 따른 실천 과제들에 응답하여, 2025년 10월 3일 회의에서 하느님의 섭리 수녀회 종합 리더십 위원회는 전체 수도회를 대표하여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섭리 수녀회 서약문(Commitment Statement)”**을 채택하였습니다. 천주섭리 수녀회의 다짐 선언문 국제수녀회인 천주섭리수녀회 수녀들인 우리는, 세상에 하느님 섭리를 더욱더 드러내도록 부름 받는다. 하느님의 충실한 돌보심에 대한 깊은 신뢰에 뿌리를 둔 우리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고통의 문턱에서, 그리고 배제와 희망이 공존하는 곳에서 살기로 다짐한다. 섭리를 따름은 모든 형태의 배제와 차별을 거부하고, 거부당하거나 침묵을 강요받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며 측은지심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취약함과 용기가 공존하는 이러한 공간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 거룩한 땅이다. 주변부에서 우리는 서로 주고받는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우리 형제 자매들의 지혜와 강인함과 사랑으로 변모되고, 모든 이와 공동체 안에 살아계신 섭리를 발견한다. 우리는 지지와 동행과 연대의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며, 배척하지 않는 세상, 모든 이가 섭리의 사랑받는 자녀로 존중받는 세상을 위하여 일하기로 다짐한다.2025.11.26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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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커넥션, 9권 4호글로벌 커넥션 9권 4호 노적성해 (露積成海): 이슬방울들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김은순 로사 수녀 노적성해(露積成海) 외람된 말이지만, 어느 순간 내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교과서에 배운 어느 문장이나 전에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이 갑자기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다. ‘노적성해’ 라는 사자성어가 그렇다. 이 말은 ‘이슬이라는 작은 방울들이 모여 끝내 큰 바다를 이룬다’는, 아무리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하게 하다 보면 마침내 상상할 수도 없는 큰 결실을 맺는다는 희망의 뜻을 담은 비유이다. 따라서 수도자로서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로서는, 아주 작은 나의 일상도 하느님 앞에서는 아주 소중한 것임을 상기시켜주며, 계속 나아가라고 격려해 주는 메시지가 된다. 아직도 섭리의 여성이 되어가는 중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섭리의 여성’이라는 단어로 우리 자신이 천주섭리수녀회 회원임을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섭리의 여성으로써 나는 어떠한지’ 자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섭리의 여성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창설자들로부터 비롯된 우리의 ‘카리스마와 사명’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섭리의 여성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완성은 우리를 앞서 간 선배들과 함께 하느님 앞에 설 때라고 또한 생각한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섭리의 여성으로서 우리의 여정은, 창설자의 정신과 카리스마에 근거한 깨어있는 매일의 삶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의 말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이 말을 처음 들었던 어린시절의 나는, ‘세상이 망하면 그만인데 왜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했다. 그러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이라서 비록 내일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되더라도,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뜻일 것이라고 쓰여진 글을 나중에 읽게 되었다. 이 말은, 앞서 말한 노적성해 의 뜻과 맥락을 같이하고, 우리는 아직도 섭리의 여성이 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믿는 내 개인적인 소신과도 비슷하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태도로 매일의 삶에 충실한 멤버들은, 언젠가는 큰 바다를 이룰 수 있는 작은 이슬방울과도 같은 인내의 사람들이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주어진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려 애쓰는 성실한 이들이라고 개인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마무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현재 우리는 수도회 차원의 변화에 대한 도전의 시간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분의 지혜와 은총이 절실하다는 것을 통감하며, 그 어느때보다도 수도회 미래를 위해 깊은 기도를 바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어떤 일을 겪게 되더라도, 우리는 섭리의 여성으로서 매일의 삶에 충실할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길 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또한 그분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고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기도하는 이들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 전체 읽기는 첨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5.10.22 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