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gregation of the Sisters of Divine Pr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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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창설자 축일 편지2023년 창설자 축일 편지 빌헬름 엠마누엘 폰 케틀러 주교—7월 13일 마더 마리 드 라 로쉬—8월1일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저는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다음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좋은 창설자가 되게 하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 오늘날 성공한 여러 회사들을 생각해 보는 중에 바로 비전과 열정과 목적 의식이 떠올랐습니다. 성공한 창설자들의 역사를 보면 그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어떠한 사건, 일종의 사명감—세상을 바꾸고 타인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필요에 응답하고 싶어하는 것—과 함께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창설자들의 역사가 지닌 힘을 보면 원칙과 가치와 요구를 행동으로 옮기게 합니다. 이는 그 역사 전체에 걸쳐 흐르는 실타래가 되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지지할 마음을 갖게 하고 이를 존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만듭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수도회 창설자들 곧, 케틀러 주교님과 마더 마리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비전이 있었고, 그들은 필요성을 느꼈으며, 그들은 현존과 측은지심과 또 수십년간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하게 만들었던 목적 의식으로 당대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역사는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통하여 우리 창설자들에게서 시작되어 우리 자신의 역사를 통해 계속 엮어지고 있는 “실타래” 일부를 나누고자 합니다. 케틀러 주교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내면의 실체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상황들, 때로 대수롭지 않고 우연한 일로 보이기도 하는 상황의 참뜻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이렇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형태로 감추어져 있는 사랑 넘치는 하느님의 모든 뜻과 그분의 한없는 자비를 곧잘 알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나의 사명 안에서 나에게 맡기신 일의 전체적인 윤곽을 이제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삶 안에 일어나는 상황들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를 위해 그 상황 안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의 의도를 알기 위해 노력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섭리의 하느님께서는, 케틀러 주교님과 마더 마리처럼, 우리가 경청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과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 나서라고 손짓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얼굴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계속해서 역사를 이어가는 것…신뢰라는 우리의 카리스마와 여러 가능성들에 우리를 개방하는 카리스마를 살아가는 것으로 이 세상이, 이 시기에, 이 시간에 우리에게 이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수도회에 살아 있는 케틀러 주교님의 용기와 위험을 감수하는 정신과 마더 마리의 측은지심 그리고 사랑의 마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마더 마리의 말씀 중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힘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 영혼에 불을 던지신 분은 섭리의 하느님으로, 그 불이 제 안에서 타오르고 저를 들어 높이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우리는 마더 마리가 자신의 삶에서 극복해야만 했던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이 가족 안에서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마더 마리는 그렇게 했습니다. 여성 수도자가 되어 독일의 시골 여성들을 이끌도록 요청받았을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아우취 신부의 권력 남용 문제를 대하는 것과 너무나 불의하게 물러나는 것은 깊은 상처를 받는 일이었지만, 순수하게 따랐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인내하기에는 엄청난 정신력과 섭리에 대한 신뢰가 필요했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마더 마리의 정신에 있던 그 불이 오늘날 우리 안에 살아있으면서 우리가 맡은 일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게끔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엮어진 마더 마리의 “실타래”는 우리가 정의를 위해 일하고,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며, 타인들을 존엄과 존중과 사랑으로 대하도록 용기를 줄 것입니다. 존 알바 수녀님이 소시간경 전례서 2권에서 나누었듯이 오늘날 우리는 “마더 마리의 정신을 매우 본질적인 면에서 식별하여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위해” 애씁니다. 수녀님들과 협력회원 여러분, 저는 우리 각자와 우리 수도회를 위한 기도로 창설자들에 대한 숙고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섭리의 하느님, 저희는 수도회 창설자 케틀러 주교님과 마더 마리 드 라 로쉬의 정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창설자들이 지녔던 용기, 첫 그룹 수녀님들이 지녔던 그 용기를 저희에게 주시고, 창설자들을 따른 모든 세대의 수녀님들이 이어온 그 힘을 주소서.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으로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었던 초창기 수녀님들의 창의성에로 저희의 마음과 기억들을 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다그치기에,” 그리고 섭리와 우리 서로는 하느님 백성과 함께 나누는 선물이었고 또 계속해서 선물이 될 것임을 믿기에 당신 손에 저희를 맡기나이다. 우리의 동반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의 기원,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곳을 경축하고 선포하고자 애쓰는 저희를 도와주소서. 아멘. 섭리의 하느님과 여러 가능성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인도해 주기를 빕니다! 총장 바버라 맥멀런 수녀 출처- 두 권의 책에서 각색 소시간경 전례서—1권. 수도회 창설자들의 탄생 200주년 기념 소시간경 전례서—2권. 수도회 공동창설자 탄생 200주년 기념2024.02.12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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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컨넥션, 7권 3호시노달리타스, 참여, 친교 메리 프랜시스 플레쳐 수녀 수년간 우리 모두는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시노드 준비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종이 제정한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절차에 대해 읽어보았고, 또 여기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교회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종이 시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온전히 함께 시작하도록 요청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초대가 우리 미래의 비결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많은 담화와 글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목적 회심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목적 회심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에서 나온 것으로, 이후 많은 교회 문서와 가르침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왔다. 나는 “사목적 회심”에 관한 설명을 읽으면서,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추구하고 노력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7년에 개최한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는 “사목적 회심”을 “공동 책임과 실질적인 참여를 증진하기 위한 개방적 자세, 대화 및 자기를 내어주는 것...”으로 설명했다. 사목적 회심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식별, 계획세우기, 의사 결정 및 실행에 있어 협력적인 자세로 참여하여 예수님의 사명을 위한 일에 하나가 될 것을 요구한다. 무엇인가? 우리는 공동체 내에서는 물론 하느님 백성 가운데서 우리가 행하는 사도직에서 똑같은 공동 책임, 개방적 자세와 대화, 식별 및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초대받고 있는가? 우리가 이미 실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은사와 통찰력을 나누는 일에 온전히 참여하는 시노달리타스 정신이 세상을 위해 어떻게 우리를 친교로 이끌고 예수님의 현존이 되게 하는가?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는 특별히 급변하는 시대, 필요성을 이해하고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모두가 참여할 것을 요청했던 시대에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살아온 여러 방식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사명을 위해 새로운 차원에서 함께하는 곳으로, 보다 깊은 차원의 시노달리타스로, 더 큰 공동 책임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에 우리 수도회 통치 구조는, 수도회 각 단계의 공동체 리더들이 식별과 방향 설정과 의사 결정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통치 구조 안에서 회원들은 각자가 파견받은 사도직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였고, 각 회원은 공동체와 사도직에서 자신이 맺는 관계와 봉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돌보심을 증거하였다. 이러한 구조 방식은 수도회 창설 이후 120여년간 섭리의 여성인 우리의 삶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 방식이 적절했다. 교회 내 혹은 수도공동체 안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던 반면, 수십년간 세상은 많은 것을 배워왔고 개발해왔고 발전해왔기에, 교회 또한 마찬가지로 1960년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고 봉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시대의 징표들을 통하여 “현대화”가 요구되었고,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통하여 그리고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인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공의회에서 새로운 해석들이 있은 후, 1968년 우리 수도회 리더들은 임시 총회를 개최하여 공의회에서 우리와 모든 수도공동체들에게 요구하는 바들을 살펴보고 다루기 시작했다. 이어진1970년 정기 총회에서 수녀들은 우리 수도회의 생활과 구조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새로운 이해들을 토대로 실험과 연구를 시작하였다. “변화”를 위한 이 두 차례 총회에서 대의원들은 바티칸 공의회 결과인 새로운 신학과 교회학, 새로운 가르침과 도전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이후 50여년간 우리는 영적으로 심화되었고 지적으로 성장해왔으며 심리적으로 성숙하였고 기타 여러 면에서 강해졌다. 우리 수도회의 정신, 카리스마와 사명은 수도회 창설때와 여전히 동일하지만, 표현 방식들은 각각의 새로운 시대에 맞춰 발전해왔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세례 받은 자로서의 사명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평등성,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영적 은총의 선물의 진가를 인정함에 있어 엄청나게 성장해왔다. 개인 카리스마는 물론 공동 카리스마를 더 많이 의식하면서 우리 시대, 우리 문화, 그리고 우주적 차원에서 드러나고 있는 요청들을 위해 우리 공동체 내에서는 물론 공동체를 넘어 우리는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보다 수평적이고 원탁 형태의 리더십을 상상했다. 우리는 각 회원들이 대화와 식별과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넓혀왔다. 교육과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더 많은 정보 나눔과 회의 및 논의에 더 많이 참석할 수 있는 기회들을 통하여 우리는 수도회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 우리 수도회 역사와 카리스마를 연구하고 우리 수도회 창설의 원천으로 돌아가고 창설자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새 회헌과 총지침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이어진 수 십년간, 더 많은 대의원들이 참석하고 기도와 숙고와 경청과 나눔에서 비롯된 힘있는 총회 다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집중하였다. 수도회총회 방향선언문은 정의, 국제성, 시대의 징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도직, 리더십, 카리스마, 그리고 섭리 영성에 관한 것이었다. 1990년대, 우리는 “우리의 카리스마와 사명을 현 사회의 상황에 맞게 드러낸다”를 채택함으로써 “총체적이고도 철저한 수도회 재창설”의 필요성을 천명하였다. 이러한 수도회총회 방향선언문은 “복음과 케틀러 주교와 마더 마리가 전해준 전통을 기반을 둔… 변화, 위험 부담, 철저한 개인적 공동체적 회심, 미래 희망을 형성하는 쇄신된 시각”을 요청했다. 여기에는 “모든 회원들이 책임을 공유하는 것에 기반을 둔…참여형 통치”에 대한 헌신도 포함했다. 각각의 새 방향선언문과 총회위임사항들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공동체생활과 섭리에 대한 증거를 발전시켜가고 강화하며, 사명 안에서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하려는 보다 큰 갈망과 보다 깊은 초대에서 비롯되었다. ....................... 전체 글 읽기는, 첨부 파일 참고 ........................... image: www.google.com2024.02.12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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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부활 편지2023년 부활절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우리는 사순 시기의 막바지 여정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내면의 풍경을 숙고하면서 ‘거룩하신 분’과 많은 만남을 가지셨기를 바랍니다.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저는, 여러분 마음의 풍경이 많은 은총의 초대를 받으셨기를, 그래서 이제는 부활대축일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할 채비를 갖추셨기를 빕니다. 성주간 화요일 독서에서 봉독 되는 이사야 예언서(49:6 )를 통하여 우리는 “민족들의 빛이 되라.” 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을 듣다 보면 저는 언젠가 피정 중에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다음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빛이 된다는 것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가장 멋진 견해들 가운데 하나는 시력과 관계가 있었다. 모든 사람의 몸 한가운데 정중앙에는 실제로 불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불은 심장에서 타올랐다. 물론, 불은 항상 빛을 발하고, 사람 마음에 있는 그 불에서 발산하는 빛은 가슴을 가득 채우고 목까지 올라 머리로 스며든다. 마침내 이 빛은 눈을 통하여 몸 밖으로 나와 세상을 비추었고, 이런 방식을 통하여 사람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빛이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눈을 통하여 발산하는 그 빛의 속성은 불이 타올랐던 심장의 속성에서 그 본질을 취하였다. 유대인의 경우, 사람 심장에 있는 불과 접한다는 것은 야훼 하느님과 관계 맺는 것을 의미했기에, 하느님이 여러분 삶의 중심이 될수록 여러분의 불이 더 강하게 타오르게 되었다. 눈에서 나오는 빛이 밝을수록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었고, 그 빛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 또한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있어 빛은 속성의 문제로, 그분 제자들의 눈에서 발하는 빛은 하느님 빛의 속성을 지닌, 순수한 마음에서 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족들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서 타오르고 있는 그 불이 하느님 빛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민족들을 위한 빛이 되고자 한다면 전쟁, 폭력, 인종차별, 배신, 상처라는 어둠을 밀어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 되고자 한다면 정의를 갈망하고 갈구해야 하며, 생명과 자선의 복음을 선포하고, 우리 안에서 용서하려는 마음이 올라오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심장의 불” 로, 우리를 부활—그리스도, 우리의 빛—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섭리를 증거하는 자인 우리에게는 사명과 카리스마라는 “심장의 불” 입니다. 콜린 깁슨 수녀님 (SSJ)은 징표들(The Sign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희망은 현실을 지워버리지도, 불확실성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희망은 당신의 맥박을 느끼는 가운데, 당신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태양은 떠오를 것이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고, 그래서 당신 또한 부활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생명의 부르심에 맞갖게 일어서라, 당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여…이것이 살아가는 순간이고 빛나는 순간이고 희망하는 순간이며, 무슨 일이 있든…우리가 지닌 희망을 통해 서로 마주보고 마음을 열어 함께 나아가도록 초대를 받아, 우리의 삶은 한 개인을 위해서는 물론 모두를 위하여 밝아오는 새 희망의 표징이 될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렇듯 강한 불로 채워주시어, 여러분이 발하는 빛을 통하여 측은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 세상에 섭리의 얼굴을 보여주기를 빕니다. 그 빛이 개인적으로 또 수도회 차원에서 우리를 변모시키어 우리의 미래를 향해 담대하고 굳건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수도회 리더십 팀에서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사랑과 축복을 전하며, Sr. Barbara McMullen 총장 바버라 수녀2024.02.12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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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커넥션, 7권 2호상호문화성, 부서진 세상에 섭리를 증거하는 하나의 방법 김영미 마리아 수녀 우리 수녀회는 창설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통해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와 개방성이라는 카리스마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면서 국제수도회로서 발전해왔습니다. 우리는 창설자이신 케틀러 주교님의 발자취를 따라,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최선을 기울여왔습니다. 이는 수도회 사명선언문에도 반영되어 있고 총회방향선언문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상호문화성을 강조해오면서, 지난 총회에서는 서로 대화를 통해 이해를 심화함으로써 상호문화적 성장은 물론 상호문화 공동체를 이룩하여 사명을 수행하자는 결의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호문화적으로 성장을 이룩하고 나아가 상호문화 공동체로서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요? 상호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나누고 상호문화적 삶을 강조하지만, 아직도 상호문화 하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의 삶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총회 결의에 따라 4개의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그 중 세 개의 위원회가 상호문화성과 관련이 있기에, 저는 상호문화를 좀 더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은, 우리는 천주섭리수녀회 안에서 상호문화적 삶과 사명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상호문화가 우리 삶의 목표가 아니라, 천주섭리수녀회로서 우리의 정신과 카리스마를 현 시대와 앞으로의 시대에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상호문화를 삶과 사명의 수단(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상호문화는 기본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한 민족으로 태어났더라도 모두가 같지 않습니다. 형제자매도 서로 다른데,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은 얼마나 다를까요? 독일, 미국, 페루,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공화국, 한국 등 우리의 출신이 다른 만큼, 본질적으로 다양성과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수도공동체에 속하기에 하나됨을 추구해왔습니다. 지난 170년 동안 우리는 같은 창설자와 창설 정신, 그리고 카리스마를 공유하기에 이런 공통점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하느님 섭리를 드러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급속히 변화하고 도전이 많은 세상에서 하느님 섭리를 현양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요? 우리의 유산을 후 세대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쉽게 영향을 받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부서지고 갈등이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요? 사명선언문에 나와있듯이 섭리 안에 하나되어 “모든 피조물에게 하느님의 사랑 넘치는 얼굴”이 되고, “육화한 섭리이신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고, 심지어 이방인, 죄인, 이교인들까지 당신의 식탁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이 상호문화적 삶과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모두를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한 식탁에 앉아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갈 때 우리 가운데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발견하게 되고, 공통점-우리가 공유한 정신과 카리스마-은 더 키워나가고, 다름을 이해함으로써 상대를 더 깊이 받아들여 인정하고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이점 중 하나는 시간과 거리를 초월하여 가상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의적 방법, 특별히 테크놀로지를 통해” 자주 만나면 어떨까요? 만남의 횟수가 많아지면 언어의 장벽을 넘어 마음으로 더 따뜻하게 환대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많은 수녀님들이 이러한 대화에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과거 인간이 힘을 모아 하늘까지 닿는 탑을 만들어 이름을 떨치고자 해서 언어가 달라지고 뿔뿔이 흩어졌다면(창세11, 4. 7-8 참조), 이제는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요한17, 11)라는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라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됨이 가능함을 세상에 증거하는 섭리의 여성/사람이 되어봅시다. ........................... 전체 글 읽기는 첨부 파일 참고....................................... image: www.google.com2024.02.12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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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사순편지2023년 사순시기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벌써 재의수요일과 사순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사순시기 편지를 쓰면서 저는 총원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제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내면의 풍경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사순시기에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은총의 초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마음의 풍경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세워놓았을 지도 모르는 방어벽을 치우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 주변과 우리 안에서 자유로운 풍경으로부터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족쇄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행해온 것들 혹은 우리가 하느님께 숨겨왔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이든 하느님은 우리 한평생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풍경이 우리를 만듭니다. 우리 공동체의 풍경은 우리 각자를 만들어 왔습니다. 공동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기도처에서…어쩌면 성당에서, 산책 중에,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여정 중에 있는 수녀님 곁에서 밤새 병상을 지키는 중에…각자 변모 체험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분을 만나는 순간들을 체험해 왔습니다. 그 만남을 통하여 우리의 꿈과 갈망이 생겨나고 성스러운 방향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사명과 카리스마 또한 우리의 응답 방식을 구체화합니다. 하여금 다가가 귀를 기울여 우리 마음의 풍경을 열게 하시어,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한-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풍경을 준비하는데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느님은 우리가 협력하고 수용하고 승복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초대하시고 우리의 문제에 귀 기울이시며 우리의 응답을 은혜롭게 해주시고 우리가 자유로이 사랑의 마음으로 “예”하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위해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내어주기를 요청하십니다. 섭리의 하느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삶을 살고,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내려놓으며, 섭리의 참된 딸 혹은 아들이라는 자유 안에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느님께 등을 돌려버립니까?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따를 수 있습니까? “등을 돌리지 않도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등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분은 당신의 삶이 펼쳐질 때 자신의 풍경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분은 사랑에 기초한 분이셨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그분은 참된 분이 되었고, 그분의 메시지와 하느님의 엄청난 측은지심을 증거하는 일, 그리고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일에 충실하셨습니다. 성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분은 모든 거짓과 심판과 두려움의 결과인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사랑과 진리 안에서 여전히 충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아버지께 얼마나 깊이 의탁하셨는지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신뢰 그리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인내로이 고통 당하는 모습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고 그분을 믿는 우리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권능을 증거하는 여정을 걷는 동안, 예수님은 우리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을 따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잘 압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알 수 있는 시간과 역사라는 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충실성, 우리의 진정성, 예수님의 고통과 다른 이들의 구원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죽은 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시간과 역사가 그것을 말해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녀님들과 협력회원 여러분, 우리는 그 이야기의 끝을 가장 확실하게 신뢰하면서,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적인 현존과 자비와 연민 그리고 구원에 희망을 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의 풍경이 상처입은 이 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총기 난사, 그리고 세계 전역의 기타 여러 풍경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치유를 가져오는 자리가 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선종하신 베네딕토 16세 교종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필요한 존재, 하느님께서 뜻하신 존재 그리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존재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사순 시기 동안,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과 우리의 풍경을 메마르고 척박하게 하는 것을 모두 풀어버립시다. 우리의 사순시기 풍경이 푸르게 우거지고 초록이 넘치는 자유로운 모습이 되게 합시다. 우리 각자가 참된 내면의 풍경을 찾아 하느님의 사랑에 잠겨들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랑과 축복을 전하며, Sr. Barbara McMullen 수도회 총장 바버라 맥멀런 수녀2024.02.12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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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커넥션, 7권 1호새로운 시작-희망 가득한 바버라 맥멀런 수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 가운데 많은 이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급격한 변화와 세상의 크나큰 위기들이 날마다 우리에게 도전한다. 그러나 섭리의 사람들인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라는 선물이 있기에 흔들림없이 길을 걷게 된다. 과거 리더십 팀과 새 리더십 팀은 11월 21일부터 23일까지 인수인계를 하면서 바로 이러한 것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가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우리를 지탱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듯한 환대를 받은 우리는 함께 또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총원을 둘러보았고, 저녁에 두 차례 외식을 했다. 회의 중에 많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나누었고 6년간의 리더십 여정에서 얻은 축복과 어려움도 나누었다. 리베라타 수녀는 우리와 함께하지 못했다. 수녀는 페루를 방문하고 돌아가던 중에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넘어져 현재 회복 중이다. 다른 구성원들은 자신이 맡았던 책무와 업무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새 리더십 팀은 킹스턴 수녀들과 함께 추수감사절을 보냈다. 따듯한 환대를 받았음은 물론,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수녀들을 보게 되어 참 좋았다. 총원으로 돌아온 우리는 며칠간 회의를 하면서 개인의 책무에 대해 논의하고 1월 팀빌딩의 날을 위한 계획도 세우면서 총원과 일과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11월 20일에 도착한 김영미 마리아 수녀는 1월 31일에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바버라 수녀는 11월 20일에 도착하여11월 30일까지 머물렀다. 이 기간에 우리는 “공식 사진”을 찍었다. 바버라 수녀는 그래닛시티로 돌아가 짐을 챙겨 고양이와 함께 총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장거리 운전을 준비했다. 메리 프랜시스 수녀는 세인트루이스로 가서 바버라 수녀가 자가용을 운전하여 총원으로 돌아오는 것을 도왔고, 차내 구석구석을 이용하여 짐을 싣는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틀에 걸친 여정을 무사히 마치면서, 안전한 여행을 위해 많은 이들이 기도해 주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2월 10일 총원에 도착하였을 때, 총원의 새로운 맴버가 된 케이티(고양이)는 수녀들의 환대를 받으며,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케이티는 새로 만나게 된 친구들과 넓은 집에 적응하고 있다! 수도회총회와 선출이 6월에 마무리된 이후, 우리 각자 안에서 조용히 진행되어 온 이러한 새로운 시작이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장을 시작하면서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길을 신뢰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이 불타오를 수 있도록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 왔다. 수도회총회 방향선언문-아직은 모든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어도-이 그 길을 안내할 것이다. 우리는 희망을 가득 안고 걸어가면서 섭리의 은총이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희망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 했다. 또한, “가장 불가능한 꿈을 꾸고, 가장 터무니없는 희망을 희망하십시오 – 그러면 우리는 섭리의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것을 상상해보는 것조차 시작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인들을 위해 우리를 변모시키는 것입니다.” 라고 했다. 지난 총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명, 카리스마, 그리고 방향선언문을 살아내기로 서로 약속하면서 작은 점토를 받아 하트를 만들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작은 그릇에 담긴 하트들, 그리고 총회 장소에 놓여있던 초가 우리 경당에서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기도 안에서 여러분을 기억한다. 우리의 미래를 향해 희망 안에서 담대하게 걸어가고자 각자가 노력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우리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천주섭리수녀회는 단호하고 열정적인 여성들, 상처 입은 이 세상에서 섭리의 얼굴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임을 우리는 안다. 수도회총회에서 우리는 다음의 방향선언문을 함께 채택하였다. 육화한 섭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다그치기에 우리의 카리스마와 사명에 충실한 가운데 천주섭리수녀회 회원인 우리는 -창의적 방법, 특별히 테크놀로지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함으로써 상호문화적 삶을 실현하고 -피조물과 주변부의 취약한 이들을 돌보며 -우리의 자원을 투명하게 또 협력하는 자세로 공유하는데 헌신한다. 방향선언문에 담겨있는 단어들은 강력하고도 담차다. 총회에서 여러 논의를 하는 동안 우리가 서로에게 약속했던 것들과 우리의 마음을 나누었던 것을 기억하자.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나의 도전이다. ..............................……… 전체 글 읽기 첨부 파일 참조 .................................... image: www.google.com2024.02.12 73
